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영월 조선 6대왕 단종의 능 장릉 + 엄홍도 Feat.입장료 있음

Travel 채널픽

by 면목동이반장 2024. 3. 4. 07:57

본문

728x90
반응형
영월 장릉

영월 가볼 만한 곳
영월은 생각보다 작아서
차량으로 방문하신다면
주요 관광지를 관광하실 수 있습니다.

영월 장릉 입장
입장료 있습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나라의 역사에 관심이...
클릭해 가며
정릉의 역사를 살펴봅니다.

정릉의 역사는
자세하게 공부해 왔어요.

장릉

장릉의 유래
장릉은 조선 제6대 단종의 능이다.
단종은 1452년 왕위에 올랐으나
3년 뒤에 왕위에서 물러나 상왕이 되었다.
세조 2년(1456) 6월 집현전 학사 성삼문,
박팽년 등이 상왕을
다시 왕으로 복위하려는 사건으로
참형을 당하자,
다음 해 6월에 노산군으로
신분이 낮아져 영월 청령포로 유배되었고
그곳에서 2개월 남짓 생활하다가
홍수로 인해 관풍헌으로 옮겼다.

그러나 여섯째 삼촌 금성대군이
계획한 단종복위운동이 발각되자
결국 1457년 10월 24일에
1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세조실록에는 노산군이 자결하자
예로써 장례를 치렀다는 기록이 있으나,
실제로는 누구도 시신을 수습하지 않아
영월호장 엄흥도가
"옳은 일을 하다가
화를 입는 것은 달게 받겠다."라는 충정으로
몰래 시신을 거두어 현재의 자리에 묻었다.
이후 중종 11년(1516)
노산묘를 찾아 봉분이 갖추어졌고,
중종 36년(1541)
당시 영월군수 박충원의
현몽에 따라 제사를 지냈으며
선조 14년(1581) 묘에 일부 석물을 세웠다.
세상을 떠난 지 241년이 지난
숙종 24년(1698)에 왕으로 복위되어
묘호를 단종, 능의 이름을 장릉이라 하였다.

능침은 추존왕릉의 예에 따라
봉분 주위에 석양)과 석호를
각각 1상을 배치하였고,
봉분 앞에는 석상, 혼유석과 장명등,
봉분 양쪽에는 망주석 2기를 세웠다.
그 아래 단에는 문석인 2기와
석마 1쌍을 세웠고 무석인은 생략하였다.

엄홍도 정여각

이 비각은 엄흥도의 충절을
후세에 알리기 위하여
영조 2년(1726)에 세운 것이다.
충신 엄홍도가 영월호장으로 있을 때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봉 유배되어 관풍헌에서
1457년 10월 24일 조정에서
내려진 사약을 받고 승하하여
그 옥체가 강물에 버려지자
단종의 시신을 거두는 자는
삼족을 멸한다는 어명에도 불구하고
가족과 함께 단종의 시신을 암장하여
중신으로 추앙받고 있다.
순조 33년(1833)에 공조판서로 추증되었고
고종 13년(1876)에 충의공이란 시호를 받았다.

가슴 아픈 정릉의 이야기와
아기자기한 풍경들
영월에 가신다면
꼭 들러보세요.

반응형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